연준(Fed)의 성명서나 의장의 기자회견을 보면 항상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시장은 이들의 사용 여부, 순서, 심지어 시점에 따라 금리, 주가, 환율을 재빠르게 조정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연준이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표현 세 가지—‘patient’, ‘substantial’, ‘data-dependent’—를 중심으로 그 단어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시장이 이를 해석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Patient’: 인내는 곧 신호다
‘Patient’라는 단어는 시장에서 당분간 금리를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2015년 당시 재닛 옐런 의장이 금리 인상을 준비하면서도 성명서에 “patient”라는 표현을 유지했고, 이 단어가 삭제된 순간 시장은 정책 변화가 임박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예시: “The Committee can be patient in beginning to normalize the stance of monetary policy.” → 시장 해석: 최소한 두 번의 회의 동안 금리 동결
‘patient’가 들어가면 시장은 안도하지만, 빠지는 순간 불확실성이 커집니다. 단어 하나의 존재 유무가 금리 기대를 결정짓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 ‘Substantial’: 추상적이지만 무거운 단어
연준은 때때로 경제 회복이나 물가 안정과 관련해 ‘substantial progress’라는 표현을 씁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논의할 때 이 표현을 반복 사용했습니다. 이때 시장은 “기준금리 인상은 아니지만, 긴축의 전조”로 해석했습니다.
예시: “We have seen substantial further progress toward our goals.” → 시장 해석: 자산 매입 축소 시점이 다가옴
여기서 ‘substantial’이란 얼마나 구체적인가? 사실 숫자로 정의되진 않습니다. 연준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기 때문에, 시장은 물가와 고용 지표를 해석할 뿐 아니라, 의장의 표정과 말투까지 분석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3. ‘Data-dependent’: 유연함의 다른 말
‘Data-dependent’는 겉보기에 가장 모호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등장하면 연준이 정해진 경로 없이, 지표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입니다. 금리 인하를 확정하지도, 인상을 고수하지도 않는 전략적 모호성의 표현으로 자주 쓰입니다.
예시: “Policy decisions will be data-dependent.” → 시장 해석: 매파와 비둘기 사이, 해석은 다음 지표가 결정
실제로 이 표현이 등장한 뒤에는 CPI나 고용지표 등 주요 수치가 시장을 더 크게 흔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준이 정책의 방향을 넘긴 셈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애매하게 말할까?
연준이 직접 “앞으로 금리를 몇 번 인상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는 언제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시장에 불필요한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이런 표현들을 전략적으로 씁니다.
이런 표현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중앙은행의 소통 기술(Central Bank Communication)입니다. 시장과 정부, 국민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에, 애매하지만 정교한 표현들이 선택되는 것입니다.
마치며
‘patient’, ‘substantial’, ‘data-dependent’. 이 단어들은 연준이 시장과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수천조 원이 오가는 금융시장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기자회견이나 성명서를 볼 때 이제는 단어 하나도 가볍게 넘기지 마세요. 그 안에 연준의 방향과 의도가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준의 점도표(Dot Plot)를 해석하는 법과, 이를 어떻게 시장이 선행지표로 활용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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